Bright and Clean Heart of IYF
밝고 깨끗한 마음, IYF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으로 인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미래의 인재를 양성한다.
작성일 : 2013.06.15
아이티 영어캠프 특집, '쉘리와 오벤즈 형제'
▲ 쉘리네 집으로 가는 꼬부랑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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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어렸을 적 배웠던 ‘꼬부랑 할머니’라는 노래가 생각하는 쉘리네 집 가는 길. 꼬부랑거리는 길에는 지진 이후에 버려진 돌들이 널려져 있다.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내 몸은 흔들거렸지만, ‘쉘리네 집은 어떨까?’ 라는 단 하나의 의문에 내 생각은 맞춰져 있었다.
▲ 어서 오세요~ (쉘리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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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리는 작년 4월에 IYF를 만나고, 6월 영어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아이티 남학생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댄스 자원봉사자에 떨어지고, 캠프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IYF지부장에게 애원했다. “저 너무 영어캠프 참석하고 싶어요. 제발 아무 거나 좋으니까 좀 시켜주세요~” 고마운 건지 너무한 건지 캠프 내내 발전기 지키는 일을 하게 된 쉘리. 자신이 부탁한 일이지만 다른 친구들이 댄스를 하는 중에 윙윙거리는 발전기 앞에 가만히 서있는 것은 힘들고 짜증났다. 자신은 댄스도 잘하고 옳은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점점 짜증만늘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자신이 이런 사람이하는 것에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이번 해에도 댄스 자원봉사자에 지원한 쉘리는, 올해는 댄스팀의 메인이 되어 영어캠프에 참석했다. 일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오늘 우리는 변화된 쉘리의 삶을 좀더 가까이서 보고자 쉘리네 집, 동네 등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쉘리에 대한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내리세요~ 도착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난 생각에서 깨어나 차에서 내렸다.
▲ 표정없는 아이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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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리네 집은 큰 길에서 내려 작은 골목, 골목길로 또 들어가야 했다. 골목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이 없었다. 온 몸에 진흙이 묻은 채 길거리에 서있는 아이들은 눈에 순수함이 아닌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어떤 아저씨는 사진 기자님(앞으로 삼촌으로 부른다.)이 사진을 찍자 아주 싫어하며 2불을 내라고 했다. 이해가 되었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그들의 표정은 그들도 느끼고 있을 터. 볼품 없는 자신의 모습이 찍히자 화를 내고, 그 대가로 돈이라도 내놓으라는 그 아저씨에게 화보다도 연민을 주고 싶었다. ‘우리 IYF사람들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데… 기쁨으로 가득 찬 그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꽃피운 그들의 표정을 드러내기 아주 좋아하는데…’
▲ 쉘리의 누나와 굿뉴스코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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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리네 집에 도착하자 쉘리의 누나가 우릴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떠나 도시로 나온 쉘리는 동생 오벤즈와 함께 누나, 매형 그리고 조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누나의 성격은 아주 쾌활해 보였다. ‘쉘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누나는 신나게 대답했다. “전 솔직히 쉘리를 싫어했어요. 우린 말만 하면 싸웠거든요. 근데 쉘리가 IYF를 만난 후에 많이 바뀌었어요. 표정도 밝게 바뀌고 제 말도 잘 들어요.” 쉘리는 으쓱거리며 덧붙였다. “IYF를 만나서 전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누나와 아주 친하죠.” 누나는 “무슨 음식을 가장 잘 만들어요?” 란 질문에 “전 쇼콜라를 잘 만들어요. 한번 먹어볼래요?” 하고 식당으로 부리나케 걸어갔다. 우리에게 온 마음을 연 것이 느껴졌다.
▲ 쉘리의 누나가 만들어준 쇼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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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 만드는 방법을 찍고 싶어서 삼촌을 찾자 삼촌이 집에 없었다. 삼촌은 쉘리네 이웃집에 있었다. “삼촌! 얼른 오세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데 사진 찍고 싶어요~!“ 10분 뒤에 삼촌이 오셨다. “삼촌 어떻게 된 거에요?”, “어떤 학생이 사진 찍는다고 또 화내면서 오는 거야. 그러더니 동양인이 여기 왜 왔녜. 그래서 "난 IYF 영어캠프에서 사진찍어"라고 말했어 그리고 난 IYF에서 들었던 마인드강연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이야기 해 줬어 그랬더니 에델 눈에 눈물이 고였어. 나도 울 뻔 했어!!…”
▲ 맨 앞쪽이 에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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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이라는 그 학생이랑 친구가 된 삼촌은 온통 에델 생각으로 가득한 듯 했다. 쉘리네 식구들과의 인터뷰를 재촉하고 에델이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며 얼른 가보자고 했다. 삼촌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린 인터뷰를 얼른 끝내고 에델 집으로 갔다. 에델은 삼촌을 초대했는데 삼촌을 포함해 7명이 집에 우르르 들어오자 당황한 에델은, 친척과 함께 살아서 집에 들어오진 못할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우린 집 앞마당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아주 비좁아 보이는 집 안을 힐끗 보니 방 안에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들도 골목에서 본 사람들과 같이 아무 목적 없는 눈으로 그냥 방안에 앉아 있었다. 마치 사우나에서 땀을 뺀 후 기운이 없어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 같았다.
▲ 에델의 집 앞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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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카메라에 찍힌 것에 대해 화가 나 찾아왔던 사람. 말씀을 듣고 5분만에 마음이 바뀌고 화를 냈던 사람과 친구가 된 그 사람. “내년에 네가 다시 아이티에 온다면 영어캠프 자원봉사자가 된 나를 만나게 될 거야.”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바뀔까?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인드 강연에 놀랄 수 밖에 없다.
▲ 아이티에서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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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리네 집에서 나오자 배꼽시계가 점심임을 알려줬다. 우린 아이티 현지 음식을 맛보고자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한국이었다면 천막으로 문과 천장이 만들어져 있는 이 곳을 식당이라 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여긴 아이티의 식당이다. 밥에 고기가 들어간 매운 소스를 곁들인 현지 음식을 먹은 후 식당 밖으로 나왔다. 모두 배가 부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수다를 떨며 차로 돌아가는 데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돈을 달라고 했다. 우린 돈이 없다고 하고 얼른 차에 탔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근데 우리와 같이 있었던 오벤즈(쉘리의 동생)는 그 사람을 말리지도, 내려가라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혼자 현지인인데 현지어로 좀 막아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계속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자 그 사람은 차에서 내려 험악한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오벤즈는 그 사람이 떠나간 후 말했다. “내가 아까 도와줬으면 분명 때리거나 총을 꺼내서 쐈을 거야. 여기선 현지인이 끼어들면 일이 커지고, 외국인들이 상대해야 돌아가거든.”
▲ 땁땁(아이티 택시)으로 올라타고 있는 기자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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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아무 것도 모르고 우릴 도와주지 않았다며 원망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오벤즈에게 미안했다. 우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오벤즈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오벤즈는 약간 머쓱해 하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예전에 저렇게 살았으니까. 이 거리에 매일 같이 서서 사람들과 싸우고 돈을 빼앗는 게 내 삶이었어. 저 갱스터들처럼…” 오벤즈가 말을 마치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우린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순수한 오벤즈가 저 사람들 같이 살았다니… ‘정말 IYF를 만나면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 구나’ 싶었다.
▲ 차 안에서 보이는 아이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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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린 델마 시청으로 갔다. 시청은 아이티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시장님은 제작년에 박옥수 설립자를 통해 IYF와 연결돼, 현재까지도 IYF의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다. 시청을 IYF의 집처럼 생각하라는 시장님의 말을 아주 잘 기억해둔 우리는 아이티IYF지부장이 올때까지 시청에 있기로 했다. 시청은 I정말 시원하고 기사를 쓰기에 딱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 시청의 샹들리에 아래에서 (오른쪽 아래가 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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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해야지…’ 하는데 천장에 높이 달린 샹들리에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샹들리에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쉘리의 제안에 얼른 자리를 잡고 섰다. 사진을 찍는데 쉘리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도 그 표정이길래 쉘리에게 물었다. “쉘리, 넌 참 행복해 보여, 그거 알아?” 쉘리가 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IYF를 만나서 표정이 바꼈어. 뭐, 표정이 아니라 마음이 바꼈지. 우리 엄마가 옛날에 날 보면 미래가 안 보인다고 했는데 요즘엔 나보고 ‘네가 커서 자식을 낳으면 꼭 IYF에 데려가라.’고 할 정도라니까?” 쉘리하고 말을 하는 동안 우리 얼굴에도 웃음꽃이 퍼졌다.
▲ 시청 직원들과 함께하는 아카펠라 즉석 콘서트 (아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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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쇼파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글을 한자 두자 쓰려는데, 이번에는 시청 직원들이 지나다니며 우릴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 IYF에서 첫 번째로 배운 것이 마음을 여는 것 아닌가. 비록 그분들은 아주 무게 있어 보였고, ‘내가 시청 공무원이다.’라는 듯한 눈빛이 있었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아이티의 인사말인 “봉쥬르~”를 외쳤다. 처음에 그 분들은 당황하는 듯 하더니 우리가 불어를 하는 줄 알았던지 이내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영어와 불어가 미묘하게 섞였던 그 대화는 결국 미궁 속으로 빠졌지만, 그 속에서 얼핏 ‘아만데’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평소 IYF안에서 아프리카 아카펠라가 귀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그 단어를 ‘아싼떼’로 착각해 아카펠라를 시작했다. 시청 직원 분들은 그 노래가 뭔지도 모르고 ‘아싼떼~ 아싼떼~♬’ 만을 반복하며 우리와 함께 춤도 췄다.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우리의 밝은 마음을 만나면 바뀐다. IYF로부터 나온 그 귀한 마음은 누구든지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숙소로 쓰고 있는 학교로 돌아가는 길. 쉘리가 말을 꺼냈다. “난 어제 잠을 못잤어. 어제 그라시아스 음악학교 학생들이 우리(아이티 현지 자원봉사자들)만을 위해 공연을 해준 건 정말 날 두근거리게 했거든. 그리고 오늘이 영어캠프의 마지막 날이란 생각을 하니까 아쉽기도 하고 뭔가 슬퍼서 잠이 안 오더라고.. 내년까지 언제 기다리지?” 정말 뭉클했다. 어느새 영어캠프가 끝났고 우린 곧 헤어진다는 생각이 불현듯 나에게 찾아와 슬픔을 주고 갔다. 하지만 난 이내 행복해졌다. 우린 IYF 안에 있고 마음이 하나되어 흐르기 때문이다.
▲ 쉘리네 집에서 쉘리 삼남매 |